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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 핵심 개념과 맥락

훈민정음(訓民正音)은 한글의 옛 이름(첫 이름)으로 세종대왕이 창제한 문자의 명칭이자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와 사용법 등을 해설해 놓은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세종 25년(1443년)에 창제 된 후 1446년(세종 28년)에 반포된 가르치는(訓) 바른(正) 소리(音)'이며, 28개의 낱자로 구성되어 있다. 소리글자에 속하며, 배우기 쉽고 읽고 쓰기에 편리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훈민정음이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한글의 시초이며, 훈민정음은 1446년에 정식으로 반포됐고 한글이란 이름은 주시경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훈민정음은 반포된 초기에 '정음(正音)'으로도 불리었고 그밖에도 언문(諺文), 언서(諺書), 반절(反切), 암클, 아햇글 등으로 불리우면서 양반들에 의해 홀대 받았다. 그러나 한자에 비해서 배우기 쉽고 읽고 쓰기가 쉬웠기 때문에 널리 보급되어 오늘날에는 한국어를 표기하는 공식문자가 되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한후에 궁중에 성삼문, 신숙주, 최항, 정인지, 박팽년 등 집현전 학자들에게 명하여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을 발간하도록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훈민정음 해례본'은 기록에만 존재할뿐 한 권도 전해지지 않았었는데, 1940년 경상도 안동에서 약 500년만에 처음 발견되었으며 현재에는 서울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962년에 국보 70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동아시아 공동문어이자 보편문자인 한문은 다른 나라의 문자이며 한글은 본국의 글 == 당시 동아시아 공동문어(共同文語)이자 보편문자(普遍文字)의 위상을 확고하게 다진 한문은 우리나라에서 진문(眞文)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훈민정음'으로 명명하여 그 표준음의 정립과 언문일치의 글에 대한 의식을것은 초기 근대화 과정에서 보이는 국어 인식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 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1894년 11월 21일 고종의 국문 칙령 이후 전통적으로 ‘眞文’으로 여겼던 한문을 다른 나라의 문자로 인식하고 한글을 본국 글로 여기는 국어 의식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 역사 == 1443년(세종 25년) 12월에 훈민정음 28자가 창제되었다. 세종은 성삼문, 신숙주, 최항, 정인지, 박팽년 등 집현전 학자들에게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발간과 <동국정운>을 편찬하도록 했으며 최항과 박팽년에게 『고금운회거요』의 번역을 명했다. 1445년(세종 27) 4월에는 훈민정음을 사용하여 악장(樂章)인 『용비어천가』 를 편찬사업을 진행하였다. 1444년 2월 최만리, 신석조, 김문, 하위지, 정창손, 송처검, 조근 등 집현전 내 훈민정음 반포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6가지 이유를 들며 반대상소를 올렸다. 이때 상소를 올린 집현전 학자들의 대표격이었던 부제학 최만리가 한글반포에 대해 크게 반대하다가 세종의 노여움을 사 책망받고 투옥 되었다. 그는 다음날 석방되었으나 사직하고 낙향했다. 1446년 음력 9월에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이 함께 간행되었는데, 이 책에는 훈민정음의 창제목적과 원리, 사용법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세종은 하급 관리를 뽑을 때 훈민정음을 시험 과목에 추가하도록 하였고, ‘삼강행실’과 같은 국가 윤리를 훈민정음으로 풀어 백성들에게 가르치도록 하였는데 이 두가지 사항을 조선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명문화하였다. 사서(四書)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게했고 백성들이 관가에 제출하는 서류를 훈민정음으로 작성토록 했으며 형률 적용 과정에서 그 내용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알려 주도록 했다. 궁중의 여인들에게 모두 훈민정음을 익히도록 하고 세종 자신은 조정의 대신과 기관에 훈민정음으로 글을 내리기도 했다. 이후로 민간과 조정의 일부 문서에서 훈민정음을 사용했다. 이러한 훈민정음 보급 정책에 따라 훈민정음은 점차 퍼져 나갔다. == 책의 구성 == === 책의 구분 === 훈민정음의 판본에는 한문으로 쓰여진 예의본, 해례본 그리고 한글로 쓰여진 언해본(諺解本)이 있다. 세종실록에 실려져 있는 것을 실록본(實錄本)이라고 구분짓기도 하는데, 이는 예의본(例義本)에 속한다. 이런 구분은 편의상 그리하는 것으로 이 가운데 단행본으로 완전한 책의 형태를 지닌 것은 해례본(解例本)뿐이며 통상적으로 이를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부른다. 박승빈이 소장했던 언해본이 단행본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정밀한 조사에 의하면 『월인석보』 책머리 부분을 따로 제책한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약 500부 정도가 인쇄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의 편찬사실은 기록에만 존재할뿐, 20세기 초반경만 해도 단 한 권도 그 존재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1940년에 안동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이후 2008년에 상주에서 한부가 더 발견되어 현재까지는 두 부가 존재한다. === 훈민정음 해례본 === 《훈민정음 원본》 또는《오성제자고》(五聲製字考)라고도 하는데,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이라 불리는 이유는 기존에 알려졌던 예의(例義)편에 해례(解例)편이 추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의(例義)편은 《세종실록》과 《월인석보(月印釋譜)》에 실려 있어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해례(解例)편에 대해서는 1940년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처음으로 발견되기 전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1962년에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으로 책의 규격은 가로 20㎝, 세로 32.3㎝이다. 해례본은 “國之語音異乎中國(나라말 소리가 중국과 달라)……”로 시작하는 예의(例義), 해례(解例), 정인지 서문(序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종이 직접 쓴 예의 부분은 4장 7면으로 면마다 7행에 매행 11자, 집현전 학사들이 쓴 해례 부분은 26장 51면 3행으로 면마다 8행에 매행 13자, 정인지가 쓴 서문은 3장 6면에 한 자씩 낮추어서 매행 12자로 구성되어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예의, 해례, 서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의편(例義)은 훈민정음 창제목적을 밝힌 어제서문과 새 글자의 음가, 운용법을 설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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